글로벌 항공유 공급망의 구조적 장악력과 패러다임 전환: 한국 정유산업의 비산유국 역설과 미래 생존 전략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서 대한민국은 원유를 단 한 방울도 생산하지 못하는 절대적 비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항공기들의 동맥을 책임지는 세계 최대의 항공유(Jet Fuel) 수출국이라는 독보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연간 항공유 생산량은 약 1억 5,000만 배럴에 달하며, 이 중 무려 60%에 해당하는 약 9,000만 배럴이 해외로 수출되었다. 이는 하루 평균 약 24만 6,000배럴에서 25만 배럴의 항공유를 글로벌 시장에 쏟아내는 것으로, 유럽의 물류 허브인 네덜란드(일평균 약 17만 배럴)나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일평균 약 17만 배럴)마저 압도하는 단일 국가 기준 세계 1위의 물량이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무역 통계의 우위를 넘어, 한국 거시경제의 근간을 지탱하는 강력한 무역수지 방어 기제로 작용한다. 2025년 기준 한국은 원유 도입에 약 684억 달러를 지출했으나, 고도화된 정제 과정을 거친 석유제품 수출을 통해 407억 달러(약 58조 원)를 벌어들이며 원유 도입액의 59.5%를 회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2026년 상반기에는 이 회수율이 68.1%까지 치솟으며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석유제품은 국가 전체 수출액 중 기여도 6.1%를 차지하며 반도체, 자동차, 일반기계에 이어 4대 국가 핵심 수출 품목으로 자리매김하여 총 수출 7,000억 달러 달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1차 원자재를 가공해 최고 부가가치의 첨단 에너지 상품으로 재수출하는 이 ‘비산유국의 역설’은 단순히 지정학적 우연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막대한 자본 투자, 기술적 고도화, 그리고 정밀하게 직조된 물류 인프라의 결정체다.   

본 보고서는 한국이 글로벌 항공유 수출 1위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심층적인 구조적·기술적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된 공급망의 딜레마를 진단한다. 나아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탄소 규제에 따른 지속가능항공유(SAF) 의무화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 속에서 한국 정유사들이 직면한 원료 수급 리스크와 석유화학 통합 등 미래 생존 전략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1. 수출 주도형 정제 산업의 구조와 글로벌 시장 지배력

한국의 정유산업은 태생적으로 협소한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수출 지향형(Export-driven)’ 구조로 설계되었다.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 GS칼텍스, S-OIL, HD현대오일뱅크)는 2000년 수입 원유 대비 석유제품 수출 비율이 34.3%에 불과했으나, 2023년에는 이 비율을 49.2%, 최근에는 절반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사실상 도입한 원유의 절반을 가공하여 해외로 팔아치우고 있다. ‘수출하지 않으면 재고가 남아돈다’는 구조적 압박이 역설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제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권역을 장악한 물류 네트워크와 국가별 수출 다변화

한국 정유사들의 항공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수출은 특정 국가에 편중되지 않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광활하고 안정적인 해상 물류망을 통해 전 세계 주요 거점으로 뻗어나간다. 2024년 및 2025년 대한석유협회 및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종합하면, 한국 석유제품의 최대 수요처는 선진국 및 글로벌 물류 허브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다.

수출 순위주요 수출 대상국석유제품 수출 비중 (2024-2025)항공유 시장 내 한국산의 역할 및 구조적 특징
1위호주16.8% ~ 18.0%자국 내 정제 시설의 급격한 노후화 및 연쇄 폐쇄로 인해 연료의 전면적 수입 의존화 (4년 연속 최대 수출국)
2위싱가포르12.5% ~ 13.6%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해상 운송, 석유 거래 및 블렌딩 허브로서 막대한 중간 물량 소화
3위일본11.3% ~ 12.9%내수 정제설비 통폐합 지속 및 지진 등 자연재해 대비 국가 차원의 수급 안정화 목적 수입
4위미국8.8% ~ 12.2%PADD 5 (미국 서부 해안) 지역의 만성적인 항공유 정제 능력 부족을 직접적으로 보완 (수출액 역대 최대)
5위중국8.7% ~ 10.9%거대 내수 시장의 경제 성장과 항공 수요 폭증에 따른 아시아 역내 단거리 공급망 활용
출처 : 대한석유협회,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입 동향 분석 종합

위 데이터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신흥국이 아닌, 에너지 자립도가 높거나 자체적인 산업 인프라를 갖춘 호주,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조차 한국산 항공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수요 밀집 지역의 한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이점은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통한 원유 도입과 석유제품의 신속한 해상 수출을 가능케 하는 핵심 물류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호르무즈의 역설: 미국 서부 해안(PADD 5)의 한국산 항공유 종속성

한국의 글로벌 항공유 시장 지배력을 가장 극명하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다름 아닌 세계 최대의 에너지 강국인 미국의 서부 해안(PADD 5: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하와이, 워싱턴, 오리건 등) 시장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2024년 데이터에 따르면, 이 지역 항공유 수입 물량의 무려 71%에서 최대 80% 이상(일일 약 7만 7,000배럴)이 대한민국산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셰일 혁명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이룩한 미국이 왜 태평양 건너 한국의 항공유에 목을 매고 있는가. 이는 복합적인 지리적, 환경적, 원료적 제약이 맞물린 결과다.   

첫째, 원료 속성의 불일치다. 미국 본토에서 대량으로 쏟아지는 셰일오일은 API도(초경질유)가 매우 높은 가벼운 원유다. 이를 정제하면 주로 휘발유나 액화석유가스(LPG)가 대량 산출되며, 항공유나 경유와 같은 중간유분(Middle Distillates)의 수율은 태생적으로 낮다. 과거 중질유를 처리하도록 설계된 기존 정유시설들이 경질 셰일오일을 투입받으면서 발생한 공정상 불균형이 항공유 생산의 물리적 한계를 초래했다.   

둘째, 물류 인프라의 단절이다. 미국의 거대 정제 시설들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를 중심으로 한 멕시코만(US Gulf Coast)에 밀집해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항공 수요가 폭발적인 서부 해안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록키산맥이라는 거대한 지형적 장벽을 넘어야 하나, 이를 관통하는 대규모 송유관 인프라가 부재하다.   

셋째, 극단적인 환경 규제다.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서부 해안 지역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가혹한 환경 규제를 적용받고 있어, 정유 공장의 신규 증설은커녕 기존 노후 설비들의 유지 보수 및 가동마저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정제시설 축소로 제한된 항공유 공급과 빠르게 회복하는 항공 수요 사이의 거대한 구조적 공백을, 태평양을 건너오는 최고 품질의 한국산 항공유가 메우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 서부 해안의 하늘길이 중동산 원유를 정제한 한국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거대한 상호의존성의 방증이다.   

2. 부가가치 창출의 연금술: 고도화 설비와 공정 기술의 초격차

비산유국의 역설을 현실로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천문학적인 선제적 자본 투자와 이를 통해 구축된 세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 설비(Upgrading Facilities) 및 정밀 화학 공정 기술력이다.   

‘지상 유전’ 고도화 설비의 경제학과 정유사별 경쟁력 비교

정유산업의 본질은 단순히 원유를 끓여 비등점에 따라 제품을 분리하는 상압증류시설(CDU)에 국한되지 않는다. CDU 공정을 거치고 나면 타르와 같이 끈적하고 벙커C유로 쓰이는 저부가가치의 중질 잔사유(Residue)가 남게 되는데, 이를 고온, 고압, 특수 촉매를 이용해 분자 구조를 쪼개어(Cracking)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 제품으로 변환하는 공정이 바로 고도화 설비다.   

한국 정유 4사는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와 경질유 수요 증가를 예측하고 일찍이 ‘지상 유전’이라 불리는 이 고도화 설비 확충에 조 단위의 투자를 단행했다. S-OIL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고도화 설비에 6조 3,000억 원을, GS칼텍스는 2013년까지 5조 원을 쏟아부었으며,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역시 수조 원대의 릴레이 투자를 이어갔다. 그 결과 한국 정유사들의 고도화율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도약했다.   

정유사명상압증류용량(CDU)고도화 설비 용량고도화율 (비율)주요 특징 및 설비 경쟁력
HD현대오일뱅크일산 52만 배럴21만 7,000배럴40.6% ~ 41.7%국내 정유 4사 중 최고 고도화율 달성. 잔사유 분해를 통한 극한의 수율 최적화 구조 확보
GS칼텍스일산 약 80만 배럴34.4%여수 단일 공장 기준 세계적 규모. 대규모 투자를 통한 경질유 생산 역량 극대화
S-OIL일산 66만 9,000배럴33.8%울산 공단 내 대규모 RUC/ODC 설비 가동. 탈황 및 중질유 분해 능력 최고 수준
SK에너지 (울산)일산 84만 배럴27.5%사실상 단일 공장 기준 세계 1위 정제 능력(Top 5 규모). 광범위한 블렌딩 인프라 보유

이러한 고도화 설비의 완비는 원료 조달의 유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준다. 품질이 낮고 가격이 저렴한 중남미산 또는 중동의 초중질 원유를 수입하더라도, 높은 고도화율을 바탕으로 이를 고부가가치의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어 정제마진(Crack Spread)을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국제 유가의 등락과 무관하게, 값싼 중유(벙커C유)와 비싼 항공유·경유의 가격 차이(스프레드)가 벌어질 때 정유사들의 복합마진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는 이익 구조를 지닌다.   

항공유 품질의 핵심: HCR(수소첨가분해) 및 Merox 공정의 화학적 기제

비행기는 기압이 낮고 온도가 섭씨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의 성층권 하부 환경에서 장시간 운항한다. 따라서 항공유(Jet A-1)는 저온에서 얼지 않아야 하며, 엔진 내부 배관을 부식시키거나 노즐을 막는 미세한 불순물조차 완벽히 제거되어야 하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물리·화학적 품질 규격을 요구받는다.   

한국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항공유가 까다로운 미주와 유럽 시장을 석권한 이유는 수소첨가분해공정(Hydrocracking Unit, HCR)과 메록스(Merox)라는 고도 정제 기술을 완벽하게 조합하여 불순물을 원천 차단하기 때문이다.

감압증류탑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낮은 감압중질경유(VGO)가 HCR 반응기(Reactor)로 투입되면, 촉매의 존재 하에 순도 99%의 수소 기체와 함께 고온·고압 상태에 노출된다. 이때 수소 기체가 단단하게 결합된 탄화수소의 벤젠 고리(Benzene Ring)를 공격하여 끊어내는 분해 반응(Cracking)과, 질소 및 황 성분에 수소가 결합하여 황화수소(H2S) 및 암모니아(NH3) 형태로 이탈시키는 수소화 탈황 반응(Hydrogenation)이 연속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일반적인 유동접촉분해(RFCC) 공정과 달리 HCR 공정은 불포화 탄화수소를 완벽히 제거해 옥탄가는 낮추되 세탄가는 높여 발열량과 저온 유동성이 극도로 우수한 항공유와 디젤을 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후 추출된 항공유 기재(Raw-Kerosene)는 Merox (Mercaptan Oxidation) 공정으로 이송된다. 원료 내에는 극심한 악취를 유발하고 금속 부식을 일으키는 유기황 화합물인 머캡탄(Mercaptan, R-SH)이 잔존한다. Merox 공정에서는 이 머캡탄에 가성소다(NaOH)와 공기를 주입하고 특수 촉매를 반응시켜, 부식성이 전혀 없는 이황화물(Disulfide, RSSR)로 전환하는 스위트닝(Sweetening) 작업을 수행한다. 최종적으로 수분(Water Wash)과 염분, 계면활성물질을 정밀 필터(Salt & Clay Filter)로 걸러내면, 전 세계 어느 공항에 급유해도 완벽한 성능을 발휘하는 한국산 최고급 항공유가 탄생하게 된다.   

단일 공장(Single Site) 기반의 물류 효율성 및 인프라의 경제학

고품질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하더라도, 이를 적기에 저렴한 비용으로 수송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상실한다. 한국의 정유 공장들은 절대적인 국가 전체 규모에서는 미국이나 중국에 밀릴지 모르나, 단일 공장 기준으로는 울산(SK, S-OIL), 여수(GS), 대산(HD현대) 모두 세계 최상위권의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공정들이 지리적으로 한곳에 밀집해 있음으로써 설비 간 열에너지 교환, 부생 가스 상호 활용, 유지보수 최적화 등 막대한 유틸리티 절감 효과를 거둔다.   

여기에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 송유관(Pipeline) 네트워크는 육상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숨은 공신이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 내부와 내륙 저유소(서울, 대전, 광주 등)를 연결하는 송유관의 총연장은 60만 킬로미터에 육박하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경질 석유제품의 약 30%가 유조차가 아닌 첨단 PE(폴리에틸렌) 코팅 처리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지하 송유관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동 펌핑되어 공급된다. 또한, 아시아·태평양 물류의 요충지에 위치한 해안가 공장들은 대형 유조선(VLCC)이 직접 접안할 수 있는 심해 항만을 갖추어 수출 시 물류비 제로에 가까운 절대 우위를 누리고 있다.   

3. 구조적 함정과 지정학적 취약성: 호르무즈 해협의 그림자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수익 구조를 갖춘 한국 정유산업의 아킬레스건은 생산 인프라가 아닌, ‘원료 조달망의 기형적 편중’에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이 도입하는 전체 원유의 무려 71.5% 이상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와 다변화 정책의 구조적 실패

중동산 원유가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는 이란과 오만 사이의 폭격 거리 내 좁은 수역인 ‘호르무즈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2026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장기화, 미국-이란 긴장 고조,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도발 등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한국 정유업계의 원유 수급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이 해협이 단기간이라도 봉쇄될 경우, 전 세계 비행기의 하늘길을 통제하는 한국의 항공유 공급망이 마비되며 미국 서부 해안까지 도미노 타격을 입는 글로벌 에너지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헤징(Hedging)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정유업계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부터 끊임없이 공급선 다변화를 시도해 왔다. 2026년 초에는 비중동산 원유 수입 시 리터당 최대 16원의 수입부과금을 환급해 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미국산 원유 도입량을 하루 60만 배럴까지 늘리며 전체 수입국 중 미국이 2위로 올라서는 등 단기적인 의존도 낮추기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호르무즈 리스크가 완화되면 귀신같이 다시 중동산 원유로 70% 비중이 회귀하는 현상이 지난 50년간 반복되어 왔다. 이는 정책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한국 정유산업이 고착화시킨 ‘시스템적 경로 의존성’ 때문이다. 첫째, 앞서 상술한 수십조 원짜리 고도화 설비들은 황 함량이 높고 밀도가 무거운 ‘중동산 중질유(Heavy Sour Crude)’에 맞춰 수익성을 극대화하도록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미국산 셰일오일과 같은 초경질유를 과도하게 투입할 경우 고도화 공정의 효율이 급감하고 수익성이 파괴된다. 둘째, 물류비의 경제학이다. 중동-한국 항로는 대형 유조선을 통해 대량 운송이 정립되어 있어 운임이 가장 싸다. 반면, 미국산이나 남미산 원유는 운송 기간이 길어 재고 부담이 급증하고 파나마 운하 통과 등의 제약으로 물류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결국 원료 조달망 다변화는 경제 논리 앞에서 번번이 꺾일 수밖에 없는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4. 하늘길의 탈탄소화: 지속가능항공유(SAF) 패러다임과 기술 지형도

화석 연료에 의존해 쌓아 올린 성공 방정식은 전 지구적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직면했다. 온실가스 감축의 압박 속에서, 비행기를 전기 배터리나 수소로 단기간에 대체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지속가능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다.   

SAF는 동식물성 유지, 폐식용유, 생활폐기물 등 바이오매스나 대기 중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친환경 연료로, 화석 기반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량을 전 과정(Life-cycle)에서 최대 80%까지 저감할 수 있다. 특히 기존 항공유(Jet A-1)와 화학적 구조가 거의 동일하여 항공기 엔진 구조 변경이나 인프라 교체 없이 즉각적으로 혼합해 사용할 수 있다는 ‘드롭인(Drop-in)’ 특성을 지닌다.   

압도적 규제 쓰나미와 폭발하는 수요 전망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글로벌 SAF 수요는 2022년 24만 톤에 불과했지만, 2025년 80억 톤, 2030년 1,835만 톤, 2040년 2,290억 톤, 2050년 4,490억 톤이라는 비현실적인 기하급수적 성장 궤도를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규모 역시 현재 5조 원대에서 2027년 28조 원 이상으로 팽창할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수요 폭증은 시장 논리가 아닌 강력한 국제 ‘규제’에 의해 강제되고 있다.

  1. ICAO CORSIA 발효: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2027년부터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를 126개국에 의무 적용한다. 2019년 기준 배출량을 85% 초과할 경우 탄소배출권을 구매하여 이를 상쇄해야 하는데, 기존 항공유를 고집할 경우 한국 국적 항공사들이 지불해야 할 탄소 상쇄 비용만 2050년 기준 3,7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 지역별 강제 혼합 의무화: 유럽연합(EU)은 ‘ReFuelEU’ 법안을 통해 2025년 2%, 2030년 6%, 2050년 70%의 SAF 의무 혼합 비율을 법제화했다. 일본 역시 2030년 10% 의무화를 선언했으며,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갤런당 최대 1.75달러의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살포하며 자국 내 SAF 생태계 주도권을 쥐려 하고 있다.
  3. 한국의 법제화 및 로드맵: 한국 정부도 2027년부터 국내 출발 국제선 항공편에 SAF 1% 혼합을 전면 의무화하는 로드맵을 2024년 공식 발표했다. 단 1%의 혼합만으로도 연간 약 16만 톤의 탄소 배출이 감축되며, 이는 승용차 5만 3천 대가 연간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24년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을 전격 개정, 정유 공정에 석유가 아닌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폐식용유 등 친환경 정제 원료를 법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와 전담 기관(석유대체연료센터) 설치 조항을 마련했다.

SAF 생산 기술 경로(Pathway)의 장단점 및 경제성 분석

SAF를 생산하는 공법은 투입 원료와 화학적 전환 기제에 따라 크게 3세대로 구분되며, 각각 명확한 한계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기술 공법주요 원료기술 성숙도(TRL)생산 단가(기존 대비)온실가스 감축률기술적 장점 및 상용화 수준구조적 단점 및 극복 과제
HEFA (수소화식물성오일)폐식용유(UCO), 동물성 지방, 팜 부산물 등 지질 원료상용화 완료 (TRL 8~9)2 ~ 4배50% ~ 85%기존 정유 공정(HCR)과 유사해 인프라 활용 용이. 현재 거래되는 SAF의 절대다수 차지핵심 원료인 폐식용유의 글로벌 공급 절대 부족 및 수출 통제로 인한 확장성 한계 명확
ATJ (Alcohol to Jet)사탕수수, 옥수수 등 바이오매스 및 산업 부생가스 기반 에탄올상용화 초기 (TRL 7~8)3 ~ 5배60% ~ 95%원료가 다양하여 비(非)정유 기업의 진입 용이. 확장성이 높아 차세대 주력 기술로 부상에탄올을 다시 제트연료로 합성해야 하는 다단계 공정의 복잡성과 막대한 수소 소비량
PtL (Power-to-Liquid / e-SAF)물(그린 수소) + 포집된 이산화탄소(CO2​)실증 단계 (TRL 5~7)5 ~ 8배 이상90% ~ 100%원료 공급 제약이 없으며 토지/식량 자원과 비경쟁. 진정한 의미의 100% 넷제로 구현막대한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 요구. 톤당 6,000달러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생산 단가

자료: 글로벌 및 대한민국 지속가능항공유(SAF) 시장 기술 분석 종합   

폐식용유(UCO)의 무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쟁탈전

현재 상용화된 HEFA 공정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바로 원료 부족이다. 과거 하수구에 버려지던 골칫거리였던 ‘폐식용유(UCO)’는 이제 ‘바이오 연료의 쌀’로 불리며 국가 간 전략 자원 쟁탈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한국 정유사들은 늘어나는 SAF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해외 UCO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UCO 공급망의 큰손인 중국과 인도네시아가 수출 통제의 칼을 빼들었다. 중국은 자국 SAF 산업 육성을 위해 폐식용유 수출 시 제공하던 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 혜택을 제한하며 물량을 내수로 돌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폐식용유를 전략 자원으로 분류, 국내 의무 할당량을 채워야만 수출을 허용하는 보호주의를 발동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유럽 간의 무역 분쟁 불똥이 튀었다는 점이다. EU가 중국산 폐식용유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수출길을 막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이 한국 내 폐식용유 물량까지 모조리 쓸어 담으면서 1년 만에 가격이 50% 이상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막대한 수조 원의 자본을 들여 SAF 전용 설비를 짓더라도 정작 투입할 원료가 없어 공장을 멈춰야 하는 원료 공급망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이다.   

5. 한국 정유 4사의 선제적 대응 전략 및 사업 다각화 전망

생존의 기로에 선 한국 정유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HD현대오일뱅크)들은 SAF 시장 초기 선점, 원료 공급망 내재화, 그리고 전통 정유업을 넘어선 석유화학 및 첨단 신소재 분야로의 과감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1단계: 규제 샌드박스와 ‘코프로세싱(Co-processing)’을 통한 초기 시장 진입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SAF 전용 설비(Dedicated Plant) 투자를 당장 단행하기에는 원료 수급 리스크와 시장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이에 정유사들은 2027년 의무화 초기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기존 정유 공정에 폐식용유 등 바이오 원료를 소량 섞어 화석 연료와 함께 처리하는 코프로세싱(Co-processing) 방식을 채택하여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 S-OIL: 국내 정유사 중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승인받아 폐식용유와 팜 부산물을 활용한 실증 사업을 완료했고, 국내 정유사 최초로 항공 부문 탄소상쇄 제도에 부합하는 ‘ISCC CORSIA’ 및 ‘ISCC EU’, ‘ISCC PLUS’ 친환경 국제 인증 3종을 동시 획득했다. 2024년 8월부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티웨이항공 등 9개 국적 항공사에 SAF를 직접 급유하며 상용 운항을 개시했다.
  •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울산CLX 정제 설비를 활용해 연간 약 10만 톤의 저탄소 제품 생산 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했으며, 2025년 1월에는 국내 최초로 유럽 시장에 SAF를 수출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핵심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통해 해외 원료 공급업체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는 등 밸류체인 수직 계열화에 집중하고 있다.
  • HD현대오일뱅크: 2023년 일본 최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에 SAF 수출 물꼬를 텄으며, 최근 대한항공의 인천-고베 노선에 2026년까지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일본 노선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 GS칼텍스: 핀란드 네스테(Neste), 일본 이토추 상사 등 글로벌 메이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무기로 삼고 있다. 특히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협력해 원료의 보고인 인도네시아에 바이오디젤 정제 공장을 직접 건설, 2025년 2분기 가동을 목표로 해외 원료 직도입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있다.

이러한 정유 4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프로세싱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인증 기준의 제약과 공정의 물리적 한계로 바이오 원료 투입 비율을 극도로 낮출 수밖에 없어 본격적인 대량 생산(Scale-up) 체제로 넘어가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결국 2030년 이후 폭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조 단위의 ‘SAF 전용 설비’ 투자가 필수적인 숙제로 남아있다.   

2단계: ‘정유에서 화학으로(Crude to Chemical)’ – 샤힌 프로젝트의 함의

항공유 수출이 아무리 호조를 보여도 전통적인 석유화학 산업 사이클은 중국과 중동의 매서운 증설 공세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전례 없는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외부 변수에 극도로 취약한 연료유 중심의 수익 구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 정유사들은 다운스트림인 석유화학 부문으로의 극단적인 ‘통합(Integration)’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사업 다각화의 최전선에는 총 9조 2,580억 원이라는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의 자본이 투입된 에쓰오일(S-OIL)의 ‘샤힌 프로젝트(Shaheen Project)’가 자리하고 있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S-OIL은 이 메가 프로젝트가 가동되는 2026년을 기점으로, 현재 전체 매출의 12.8%에 불과한 석유화학 부문 비중을 단숨에 25%까지 2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샤힌 프로젝트가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이유는 사우디 아람코가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TC2C (Thermal Crude to Chemicals) 혁신 기술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식이 원유를 정제하여 나온 납사(Naphtha)를 다시 화학 설비(NCC)에 투입하는 간접적 방식이었다면, TC2C는 원유 자체를 석유화학 공정에 직접 투입하여 에틸렌, 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화학 기초유분을 즉각적으로 대량 생산해 내는 공법이다. 기존 울산 정유 공장과의 유기적인 열에너지 통합 및 부산물 순환망(배관망)을 통해 유틸리티 원가를 극한까지 깎아내려 중국 범용 제품의 저가 공세를 극복하겠다는 담대한 승부수다. 나아가 에쓰오일은 막대한 샤힌 투자가 완료되는 202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미뤄두었던 수백억 원 규모의 SAF 전용 생산 설비 건설 논의를 구체화하며 넥스트 모멘텀을 준비할 예정이다.   

3단계: AI 시대의 에너지 솔루션 – 액침냉각 및 신에너지 밸류체인 진입

분자와 화학반응을 다루는 압도적 역량을 보유한 정유사들은 전통 에너지를 넘어 전혀 새로운 산업 생태계로 침투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라 데이터센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전력 소비와 발열 문제가 한계에 봉착하자, 서버를 통째로 특수 용액에 담가 열을 식히는 액침냉각(Immersion Cooling) 기술이 핵심 솔루션으로 부상했다.   

최고급 윤활기유(Base Oil) 제조 역량을 갖춘 HD현대오일뱅크, SK엔무브, GS칼텍스 등은 통신사 및 IT 하드웨어 기업들과 손잡고 절연성과 방열 성능이 극대화된 특수 액침냉각유 개발 및 상용화 테스트를 완료하며 비정유 신사업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블루/그린 수소 생산 기지 구축,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고도화 등 화석 연료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고 종합 친환경 에너지 및 신소재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뼈를 깎는 체질 개선(Transformation)을 지속하고 있다.   

결론: 비산유국 수출 신화의 지속을 위한 국가적 제언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의 항공유 수출국이 된 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앞서간 막대한 자본 투자(초고도화 설비), 지리적 이점을 200% 활용한 물류 인프라 최적화,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고도의 HCR 및 Merox 공정 제어 기술이 결합된 치열한 생존 투쟁의 산물이었다. 원유 도입액의 약 60%를 수출로 되벌어들이며 국가 무역 수지를 방어하고 태평양 건너 미국 서부의 항공기마저 띄우는 한국 정유산업은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국가 안보 자산’ 그 자체다.   

그러나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구가하는 바로 지금, 한국 정유산업은 사상 초유의 거대한 파괴적 혁신 앞에 서 있다. 70%에 달하는 중동산 중질유 위주의 경직된 원료 의존도는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 앞에서 언제든 산업의 목줄을 죌 수 있는 구조적 덫이다. 더욱이 글로벌 탄소중립 의무화에 따른 SAF 패러다임 전환은, 지금까지 한국 정유사들을 지탱해온 ‘초고도화율’이라는 성공 공식이 미래 경쟁력을 온전히 담보할 수 없음을 냉혹하게 선언하고 있다.   

한국이 차세대 친환경 항공유 시장과 화학소재 시장에서도 글로벌 리더십을 수성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 차원의 각개전투를 넘어, 국가와 산업계가 결합한 총력전(All-out War)이 시급하다.

첫째, SAF 전용 설비 투자를 위한 전폭적인 국가 금융/조세 지원이다. 수조 원의 자본이 투입되는 초기 SAF 전용 공장 건설은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과 같다. 미국 IRA의 갤런당 1.75달러 세액 공제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설비 투자 세액 공제와 생산 차액 보조(CFD)가 즉각 입법화되어야 투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국가 주도의 원료(Feedstock) 안보 동맹 구축이다. 폐식용유 등 바이오 원료가 무기화되는 현실에서, 민간 기업 혼자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의 수출 통제를 뚫어낼 수 없다. 국가 자원 외교 차원에서 해외 농장 지분 확보와 다자간 원료 수급 동맹을 체결해야 한다. 셋째, 차세대 PtL 및 ATJ 기술 선점을 위한 R&D 컨트롤타워 확립이다. 3,600억 원 규모의 ATJ 국책 사업을 시작으로, 원료 제약이 없는 궁극적 탄소 중립 연료인 e-SAF(PtL) 상용화를 위해 산·학·연이 공동 참여하는 대규모 실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 정유산업의 미래는 더 이상 원유를 정제하는 굴뚝 산업에 있지 않다. 샤힌 프로젝트를 통한 극한의 석유화학 통합, 그리고 액침냉각과 SAF를 아우르는 친환경 화학 플랫폼으로의 진화만이 다가올 반세기 하늘길의 패권을 장악할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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